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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샤 주한 체코대사 부부(왼쪽)와 고은 시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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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익대 인근의 체코정보문화원.31일 저녁 이곳에서 이색적인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소설가인 야로슬라브 올샤 주한 체코 대사가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소재로 한 중 · 단편 소설집 《프라하-작가들이 사랑한 도시》(행복한책읽기 펴냄)의 출간에 맞춰 고은 시인과 고씨의 부인 이상화 중앙대 영문과 교수 등 문화계 인사 70여명을 초청했다. 시인이자 화가인 라르스 바리외 주한 스웨덴 대사도 참석했다.
이날 고씨는 "중세 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문화원 건물 '캐슬프라하'를 보니 비행기도 타지 않고 프라하에 도착한 것 같은데 이 책을 보니 진짜 프라하는 여기에 있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출판기념회라기보다 파티 같은 분위기였다. 체코 와인과 소시지가 뷔페로 제공됐고 참석자들은 손에 와인 잔을 들고 얘기꽃을 피웠다.
올샤 대사는 "2008년 한국에 부임해 첫 공식 행사로 고은 시인의 체코어 번역시를 낭송했던 일이 기억난다"며 "이번에는 체코의 문학작품들을 한국어로 선보이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씨는 "오늘밤 체코 문학에 취해 프라하를 체험하자"고 화답했다.
내달 체코에서 두 번째 시선집을 발간하는 고씨는 이바나 보즈데호바 카렐대 교수(한국외대 체코슬로바키아어과 교환교수)의 요청으로 즉흥 시도 발표했다.
'여기에 온다는 것은/한 번 이상 온다는 것/여기에 머문다는 것은/1년 더 머문다는 것//세상의 도시들은 날마다 부풀어간다. /여기는 그럴 수 없는 곳/오래오래 저 스스로 피어나는/지상의 꽃//미움이 미움 이전으로 돌아가는 곳/나의 프라하.'('나의 프라하' 전문)
《프라하-작가들이 사랑한 도시》는 프란츠 카프카,얀 네루다,야로슬라프 하셰크,카렐 차페크 등 체코 문인 14명의 작품을 통해 19~20세기 프라하의 정취를 맛볼 수 있도록 한 일종의 문학 여행서다. 체코 거장들이 풀어놓은 풍자와 익살,반전 속에서 프라하의 역사와 문화,풍경도 엿볼 수 있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의 구시청사 벽면에는 600여년 된 천문시계가 있다. 유명한 이 시계 앞에는 늘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매시 정각이면 시계의 창문으로 12사도가 나타나는 것을 보기 위해서다.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로 여러 차례 거론된 소설가 알로이스 이라세크(1851~1930)가 쓴 소설 '구시가지 시계의 전설'은 이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소설에서 뛰어난 천문시계를 발명한 장인 하누슈는 프라하의 스타다. 그가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시계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시장과 원로들은 끔찍한 음모를 꾸민다. 깊은 밤 자객들을 보내 하누슈의 두 눈을 뽑아 버린 것이다.
장님이 된 하누슈는 더 이상 시계를 만들 수 없게 되고 프라하의 천문시계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명물로 남는다는 내용이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시계에 얽힌 전설을 소설화했다.
카를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오해받는 한 남자의 이야기(야로슬라프 하셰크의 '정신의학의 신비'),나치 점령 시기의 프라하의 모습(이르지 바일 '멘델스존은 지붕 위에 있다'),전통 있는 재즈클럽을 찾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맞는 프라하 시민들(요세프 슈크보레츠키의 '워싱턴에서 온 테너색소폰 솔로')도 소설 속에 담겼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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