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과 갈등을 풀어주는 알코올 5%의 힘
조강수 기자 pinejo@joongang.co.kr | 제175호 | 20100718 입력
2009년 7월 30일 오후 6시 백악관 앞뜰 로즈가든. 나무 그늘에 놓인 하얀색의 둥근 피크닉 탁자에 네 사람이 마주 앉았다.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백인 경찰 제임스 크롤리 경사, 하버드대 흑인 교수인 헨리 루이스 게이츠였다. 네 사람은 한 달 전 있었던 작은 사건 때문에 빚어진 인종차별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모였다.사건은 자기 집에 들어가려던 게이츠 교수를 이웃 주민이 강도라고 신고한 데서 시작됐다. 출동한 크롤리 경사는 게이츠 교수를 체포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전국에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크롤리 경사의 행동을 어리석었다고 비난했다.
이후 인종차별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뚝 떨어졌다. 그러자 백악관 측이 소통과 화해의 자리를 마련했다. 네 사람은 맥주로 건배를 했다. 네 사람의 잔에 담긴 맥주는 모두 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버드 라이트’를, 크롤리 경사는 캐나다산 ‘블루 문(Blue Moon)’, 게이츠 교수는 보스턴에 기반을 둔 ‘샘 애덤스 라이트’, 바이든 부통령은 무알콜의 네덜란드산 ‘버클러’를 선택했다. 네 사람은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40분 만에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이날 화해주가 위스키였다면 어땠을까. 알코올 도수가 낮고 시원한 맥주가 주는 편안함이 화해의 실마리가 된 것은 아닐까.그로부터 1년. 다시 돌아온 여름은 맥주의 계절이다. 지난주 마친 월드컵 열기에 맥주도 한몫을 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흥을 돋우기도 했다. 여름철에 가장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맥주의 온도는 6~8도다. 그 온도로 냉장된 각종 맥주들이 상자째 팔려나간다. 여름이나 스포츠 하면 맥주가 떠오르는 것은 맥주가 갖는 갈증 해소 효과 때문이다. 4~5% 내외의 알코올 함량과 풍부한 미네랄의 영향이다. 맥주의 주원료인 홉(Hop)에 포함돼 맥주 특유의 쓴맛을 내는 후물론과 루플론은 신경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촉진시키는 기능이 있음이 입증됐다.
맥아에는 비타민B가 풍부해 피로 해소 효과가 있고 탄산가스(CO2)는 위액의 분비를 도와 소화를 촉진한다. 칼로리도 낮다. 맥주 100mL당 칼로리가 40~50kcal로 막걸리나 주스, 콜라에 비해 낮다. 맥주의 칼로리는 탄수화물과는 달리 몸속에 축적되지도 않는다. 많이 마신다고 살이 될 수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면 배가 나오고 살이 찐다고 믿는 건 왜일까. 맥주는 맥아와 홉을 이용해 만든 발효주이기 때문에 위스키 등 증류주에 비해 영양이 많은 편이라서 생긴 오해다. 맥주와 함께 먹는 안주에 치킨이나 햄, 소시지 등 고열량 요리가 많은 탓도 있다.
기름기 많은 안주 대신 과일이나 야채와 함께 마시면 좋다고 한다. 물 먹는 배와 맥주 마시는 배가 다르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물과 맥주는 몸에서 흡수되는 곳이 다르다. 맥주는 위장에서 흡수되는 데 비해 물은 위장을 지나 소장·대장까지 가야 흡수된다. 맥주는 흡수되는 속도도 빨라 물보다 잘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코펜하겐의 칼스버그 맥주박물관에 전시된 맥주의 수는 1만7000개에 이른다. 사람이 평생 마셔도 다 못 마실 만큼 수가 많다. 종류별로 따져도 맥주 스타일은 100가지가 넘는다.국내에 맥주가 들어온 것은 1886년 개항하면서였다. 최초의 맥주 회사는 1933년 일본의 대일본맥주(주)가 영등포에 설립한 조선맥주주식회사였다. 당시만 해도 맥주는 일부 부유층이나 상류층만 맛볼 수 있는 고급 술이었다. 광복이 되면서 일반인에게도 맥주가 전파됐다.
120여 년이 지난 지금, 맥주는 마음만 먹으면 가정에서도 만들 수 있는 친숙한 술이 됐다. 국내에서 개인이 자가 소비의 목적으로 술을 제조할 수 있게 된 건 1995년부터다. 그때부터 이른바 ‘홈 브루(Home Brew) 문화’도 싹텄다. 대량 생산되는 병이나 캔 맥주의 맛이 획일화돼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직접 집에서 맥주를 만들면 홉의 양, 발효 속도 등에 따라 다양한 맛의 맥주를 만들 수 있다. 같은 밀맥주라도 헝가리·독일·영국식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캐나다·일본 등은 오래전부터 홈 브루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캐나다의 경우 자가양조 시설과 도구를 판매하거나 빌려주는 곳이 3000여 개를 넘는다고 한다.
‘하우스맥주’로 불리는 소규모 맥주 제조장(Micro Brewery) 영업이 허용된 것은 2002년 1월 주세법이 개정되면서다. 당시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맥주 생산의 길을 열어줬다. 하우스맥주를 만들어 파는 곳은 한때 100여 곳이 넘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50여 곳이 영업 중이다. 국세청 주세 실무 책자에 따르면 소규모 맥주제조 면허를 받을 수 있는 생산시설 기준은 당화·여과·자비조 등이 0.5kL~2.5kL 용량이어야 하고 담금 및 저장조는 5kL~25kL여야 한다.
국내에선 캐슬프라하, 옥토버페스트, 비어할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우스맥주는 점포 안에서만 판매할 수 있다. 병 판매는 안 된다. 주세법상 맥주제조업 허가는 500mL 기준으로, 연간 370만 병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발효·제조 시설을 갖춰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은 맥주는 물론 청주·소주의 경우도 연간 12만 병 이상 생산시설을 갖추면 제조허가를 내주고 있다. 현행 주세법을 개정해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안이 정부 일각에서 추진된다고 한다. 그게 현실화되면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가 양분하고 있는 국내 맥주시장에는 지각변동이 온다. 머잖아 거품이 걷힌, 진짜 맥주 맛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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