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제목 [보석의 도시] 열린 역사책, 체코 프라하 작성일 2010-03-19 18:28:51
프라하를 두고 독일의 과학자 알렉산더 훔볼트는 ‘보석의 도시’라 했고, 프랑스 건축가 비올레 듀크는‘열린 역사책’이라고 불렀다. 중세 1천 년의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보전돼 있는 프라하는 유럽 역사의 중심으로서 그러한 찬사를 듣기에 손색이 없다. 동서 유럽 사이에 끼어 두 세력의 힘겨루기 대상이 돼온 블타바강 유역엔 4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다. 5, 6세기부터 슬라브족이 찾아와 정착했고, 9세기 말 이미 프라하성이 축조될 만큼 발전했다. 11세기에는 구시청사 부근에 시장이 들어섰고 12세기에는 중부 유럽 최대의 도시가 됐다. 18세기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 흡수돼 유럽 최대의 공업도시로 성장하면서 수많은 문화유적을 보유하게 됐다. 11세기 중부 유럽 최대 도시…문화 유적 많아 1968년 체코의 지식층들이 중심이 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체코인들은 당시 소련을 추종하는 노보트니 정권을 무너뜨리고 두브체크 당 제1서기를 옹립했다. 두브체크가 일련의 탈 공산개혁을 추진하고 정책의 변화를 일으키자 이를 프라하의 봄이라고 칭하게 됐다. 하지만 그 봄은 오래가지 못했다. 구소련이 주도하는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이 프라하를 침공함으로써 다시 공산 치하의 겨울을 맞이하게 됐기 때문이다. 구소련이 붕괴하자 불균등한 경제발전에 불만을 품은 슬로바키아와 상대적으로 더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던 체코 사이에 크고 작은 정치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은 1992년 12월 30일 자정을 기해 2개의 공화국으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2년 구시가지 세계문화유산 지정 인구 120만 명. 1992년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한 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올해가 체코와 한국이 수교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체코는 간단히 프라하만 둘러봐도 좋지만 체코 내 온천지로 유명한 카를로비 바리와 마리안스케 라즈네, 가장 오래된 온천지 테플리체, 중세가 멈춰 선듯한 유네스코 지정 도시인 체스키 크롬로프, 모라비아 바로크의 수도 올로모우츠 등과 엮어서 전국 일주를 해도 좋다. 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부다페스트, 소피아, 빈 등 동구권 여러 유명 도시와 엮어 둘러보는 동구 제국 패키지 여행도 국내 여행사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프라하 여행은 체코국립박물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라하의 중앙역 오른쪽에 푸른색 바탕의 황금 줄무늬가 뚜렷한 돔 건물 하나가 있다. 바로 체코국립박물관이다. 3층짜리 이 박물관은 인형과 보석, 인골, 동물 등 재미있는 역사 유물들을 많이 소장·전시하고 있다.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의 영욕을 지켜본 장소이기도 하며, 프라하의 봄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바츨라프 거리는 차도와 화단과 보행도로가 함께 설계돼 있다. 총 길이 600미터의 이 거리에 미용실, 카페, 은행,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데, 건물들이 마치 건축 박물관을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답다. 프라하를 대표하는 이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면 광장이 끝나는 지점에 메트로 A선과 B선이 교차하는 무스텍 역이 나타난다. 이 역 앞 광장은 야채 시장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어 쇼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바츨라프 광장~구시청 광장 볼거리 밀집 광장에서 약 300미터를 더 들어가면 구시청 광장이다. 구시청사 천문시계는 최고의 명물로 꼽힌다. 복잡하게 생긴 이 시계는 천체의 운행까지 표시하고 있는 정교한 계측기기이고 탑 꼭대기는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 볼 수 있다. 주변에는 언제나 수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드는데, 그 이유는 매시 정각에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매 시간 종소리와 함께 시계 안에 만들어 놓은 예수교 12사도 인형들이 춤추듯 도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다. 시청 광장에는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이 서 있고 14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건축물 틴교회의 쌍둥이 탑이 광장 건너 구시청사 시계탑을 바라보고 있다. 광장 북동쪽에 위치한 푸른 돔의 흰색 건물은 바로크 양식의 니콜라스 교회로 1753년에 완성됐다. 프라하는 곳곳에서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구시청광장을 벗어나 카를로파 거리에 접어들면 중세의 작은 길들이 꼬불꼬불 이어진다. 이들 길은 중세 때부터 있었고 작은 가게나 카페, 펍, 레스토랑들이 밀집해 있다. 프라하 예술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카를대교는 구시가와 왕궁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프라하의 젖줄 블타바강 위에 놓인 가장 아름다운 다리다. 차가 다니지 않는 인도교인 카를대교 위에서는 거리의 악사들이 바이올린과 첼로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관광객들에게 프라하의 선율을 선사한다. 다리 양쪽 끝과 양편에 교황을 비롯한 성서에 등장하는 성인의 조각품 30여 개를 세워놓아 마치 야외미술관 같다. 다리 진입부에 있는 중세시대의 탑 아래에서는 다리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돼 올라가 볼 수 있는 이 고딕 양식의 멋진 탑은 화약탑과 닮은꼴. 이 탑문에서 프라하 시내를 보면 프라하가 왜 ‘백 탑의 도시’라 불리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홍색 지붕 위에 매끈한 뾰족탑들을 갖추고 서로 자태를 자랑하는 듯한 수많은 프라하의 건축물들을 한눈에 보여 준다.   왕궁에서는 황금소로, 시내 조망까지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문인 진짜 화약탑은 1475년 구시가의 시민들이 블라디슬라프 야기엘로 왕에게 바친 결혼기념 선물인데, 17세기에 들어 화약창고로 쓰이면서 화약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프라하 시내에서는 블타바강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왕궁이 잘 보인다. 특히 구시가 쪽에서 바라보는 성의 야경은 프라하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카를대교를 건너 곧장 언덕길을 올라가면 바로 왕궁으로 이어진다. 왕궁은 현재 체코공화국 대통령이 거주하고, 국회, 정부청사, 교회 등이 입주해 있어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며 건축물마다 정교한 조각과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이 여행자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이 성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비투스 성당은 탑의 높이가 100미터에 달해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본래 고딕양식으로 축조됐지만 블라디슬라프 2세 때 후기 고딕 양식이 가미됐고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르네상스 양식이,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도 추가됐다. 비투스 성당 타워 387계단을 힘들게 올라 서면 카를교부터 프라하시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대통령궁 앞에서는 매일 매시에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 하지만 낮 12시에 하는 게 제일 볼 만해 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왕궁은 오전 11시부터 인산인해를 이룬다. 11시 30분 이전에 도착해야 사람들 뒤통수만 보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정오 근위병 교대식 보려면 일찍 자리 잡아야 프라하성을 거대한 함선으로 보았을 때 대통령궁이 뱃머리라면 선미의 오른쪽 담장 부분에 황금소로가 있다. 이즈르 교회 끝 지점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파스텔 색조의 작은 서점이나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는 거리다. 16세기에 형성된 이 골목길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곳인지라 관광객들만으로도 비좁다. 1520년대에는 프라하성을 지키는 군인들의 막사로 쓰이다가 루돌프 2세 때 왕실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연금술사들이 거주하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 가운데 19번지는 하벨 대통령의 부인 올가 여사가 운영하는 가게이고, 22번지는 ‘성’, ‘변신’, ‘심판’ 등의 작품을 쓴 실존주의 작가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라 더 유명하다. 총 길이 435킬로미터의 블타바강은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인 보헤미아 남서부에서 발원해 흐르다가 체스키 부데요비치를 지나 북진하며 프라하에 이른다. 프라하 북쪽으로 29킬로미터를 더 흘러 멜니크에서 엘베강과 합류한 다음 옛 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으로 흘러간다. 독일에서는 몰다우강이라고 불러 엘베강과 구분하고 있으므로 엘베강과 합류하는 지점까지가 블타바강인 셈이다. <자료협조=체코관광청> 프라하에서는 연중 공연을 즐길 수 있다.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체코 필하모닉을 만날 수 있고 현대 음악 연주회, 피아노 모음곡 연주회 등 주제별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특히 국립극장의 발레나 오페라는 동유럽 최고 수준이지만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저렴해 더욱 매력적이다. 프라하는 5월이면 음악의 도시로 변한다. 봄 음악 축제가 3주 동안 열리기 때문이다. 음악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곳은 시민회관의 스메타나홀이다. 19세기 체코 민족주의의 상징인 루돌피눔의 드보르작홀에서는 실내악을 연주한다. 모차르트가 한때 살았던 모차르트 기념 박물관인 베르트람카, 드보르작 기념 박물관, 아네쉬카 수도원, 발렌슈타인 정원, 문화정원, 미쿨라쉬 교회 그리고 프라하성의 슈파넬스키홀 등에서도 음악이 연주된다. 이때는 시내 각 교회에서도 음악 공연을 펼치는데, 운이 좋으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또 카를교나 구시가지 이곳저곳에서 놀라운 실력을 소유한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멋진 음악도 들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매일 전통 음악과 체코의 민속 음악을 접할 수 있다. 공연 당일에도 표를 구입할 수 있지만 가능하면 예매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시즌 티켓이나 여러 공연 티켓을 한꺼번에 예매하는 것이 좋다. 프라하에서 유명한 극장 3개만 꼽는다면 국립극장, 예스타데스극장, 국립오페라하우스를 꼽을 수 있다. 모두 18, 19세기의 스타일을 재현한 건물이다. ▶ 치안 여느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체코의 치안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곳곳에 경찰의 단속과 관광객을 위한 안내 센터가 있다. 단,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치기 등을 조심할 것. ▶ 교통 버스나 지하철, 트랩 등 대중교통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신문가판대나 지하철역, 버스정류장에서 표를 사고 탑승시 펀칭 기계에 찍으면 된다. 1·3·7일짜리 티켓이 있다. ▶ 관습 여행객들에게는 친절하고 전반적으로 상냥한 편이나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과거 냉전의 영향으로 정치적인 대화는 피하는 것이 좋다. ▶ 식수 유럽 내 수도는 석회수이기 때문에 음용에는 무리가 있다. 체코 또한 호텔 등 일부 식수를 제공하는 곳을 제외하고 생수를 구입, 음용하는 것이 좋다. 프라하 넘버원! 원조 라거 맥주에 돼지 족발 ▶ 꼴레노 프라하는 내륙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사슴이나 토끼 등을 재료로한 요리가 발달했다. 요즘은 다양한 요리들로 여행자들의 미각을 자극한다. 동구 여러 나라들과 비슷하지만 저렴한 게 매력. 가장 프라하다운 요리 중 하나를 고른다면 꼴레노(돼지 무릎) 요리다. 바비큐 식으로 구운 다음 잘라서 소스에 발라 먹는데, 유명한 식당은 카를교에서 구시가지쪽으로 두 블록을 내려와 우측으로 돌면찾을 수 있는 200년 전통의 ‘우 베이보두’라는 레스토랑이다. 이 곳에서는 헝가리 음식으로 알려진 매콤한 수프 굴라시도 맛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자티시’, ‘믈리넥 벨레뷰’ 등 자티시 케이터링 그룹 소속의 레스토랑 등은 유명 매거진들이 입증한 명소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등장했던 ‘하나브의시키’ 레스토랑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 맥주 국가 상징을 맥주라고 할 만큼 체코 사람들의 맥주에 대한 자부심은 남다르다. 세계적인 맥주를 빚어내는 큰 양조장이 있음에도 약 3천 개의 브랜드 맥주들이 독특한 색깔과 향기로 단골 고객들을 확보하고 작은 양조장들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맥주를 생산하는 곳이 바로 필젠(Pilsen)이다. 필젠은 맥주의 수도라고도 부른다. 1842년부터 생산된 필스너 우르켈 라거 맥주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약 한 시간 거리의 이 도시는 1295년에 왕가에서 세웠다. 손재주가 뛰어난 체코인의 명작들 ▶ 크리스털 사암이 많은 프라하의 가장 대표적인 쇼핑품목. 체코 보헤미아 크리스털은 파리만국박람회를 통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떠올랐다. 세계 10대 유리공예 거장 중 7명과 크리스털 액세서리로 유명한 스와로브스키도 체코사람이다. 햇빛에 비춰봤을 때 불순물이 없고 매끈한 것이 좋은 제품이다. 석류석 또한 체코의 주력 상품으로 그라넛 트루노프사 제품이 믿을 만하다.   ▶ 목각인형 손재주가 뛰어난 체코인들이 내놓은 쇼핑 품목 중 하나는 목각 인형제품이다. 마리오네트 인형극으로도 유명한 체코의 인기상품 중 하나. 특히 구시가지 광장 주변은 인형 매장이 100여 개가 넘고 국립극장 주변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 그림 꽃과 여자를 소재로 한 아르누보 형식의 대표 화가 무하의 그림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이름 모를 화가들이 그린 프라하 풍경 그림 또한 여행의 추억이 된다. 주요 관광명소에서 액세서리나 그림을 파는 행상들은 모두 프라하 시의 허가를 받은 이들이다. 황금소로의 주요 쇼핑 아이템 중 하나. 프라하!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체코어 발음으로 프라하(Praha). 영어로는 프라그(Prague), 독일어로는 프락(Prag). 이 프라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연상시킬까. 소련제 탱크에 의해 짓밟힌 1968년‘프라하의 봄’? 공산체제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너뜨린 1989년의 벨벳혁명(Velvet Revolution)의 현장? 어떤 이는 전도연이 주연한 텔레비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연상할는지도 모르겠다.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다! ‘더 시티 오브 케이(The City of K.)’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작가 카프카가 태어나 활동했던 고향이 프라하고, 그의 대표작들인‘심판’과 ‘성’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 케이(K.)기 때문이다. 체코는 문학적 전통이 강한 나라이며, 그 중심에 카프카가 있다. 체코를 대표하는 인물은 많지만 프라하에서 태어나 평생을 프라하에 살다가 프라하에 묻힌 사람은 프란츠 카프카뿐이다.   생애 41년을 프라하에서만 살다 인간의 삶에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의 지리적 환경과 살아간 시대의 역사적 환경이 나이테로 박혀 있다. 카프카가 그랬다. 카프카의 삶과 문학은 곧 프라하와 보헤미아 역사의 거울이다. 카프카는 1883년 프라하 구시가지에서 유대계 체코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883년이면 보헤미아 왕국이 여전히 오스트리아 제국의 식민통치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유대인은 여전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마에슬로바 2번지, 그의 생가(生家) 위치는 절묘하다. 유대인 구역과 구시가지의 경계선상에서 유대인 구역이 구시가지로 삐쭉 나와 있는 지점에 있다. 그래서 그는 출생부터 운명적인 경계인이었을까. 생가 외벽에 붙어있는 메마르고 날카로운 눈빛의 카프카 부조(浮彫)가 찾는 이를 반겨준다. 1924년 폐결핵으로 요절할 때까지 41년이란 카프카의 생애는 생가로부터 반경 1킬로미터 내에서 이루어졌다. 유소년기 7년을 산 집은 저 유명한 천문시계 바로 옆에 있고, 카프카가 다닌 김나지움 건물(옛 골즈킨스크 궁전)도 지금 그대로 있다. 프라하에 가면 카프카의 흔적만을 표기해 놓은 지도가 따로 있다. 작가 헤럴드 셀펠네르는 프라하에 남아 있는 카프카의 흔적을 따라가는 책 ‘프란츠 카프카와 프라하(Franz Kafka and Prague)’를 썼다. 프라하대학 시절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를 읽을 때마다 나는 전율을 느낀다. 그 프라하대학은 구시가 광장과 신시가지 바츨라프 광장의 중간쯤에 있다.   살던 집, 다니던 학교, 집필처 등 38곳 대학을 마친 카프카는 밥벌이를 위해서 1908년부터 1922년까지 보헤미아산업재해보험공단을 다녔다. 퇴근 시간은 오후 2시. 공사(公社)는 20세기 보헤미아에서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나 변함없는‘신(神)의 직장’이었나 보다. 카프카는 주로 퇴근 후인 깊은 밤에 글을 썼다. 14년간 그는 ‘성’, ‘변신’, ‘심판’ 등을 썼다. 보헤미아산업재해보험공단은 현재 메르큐레 호텔로 변해 있다. 따분한 일을 완벽하고 성실하게 해낸 직장인 카프카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프라하성 황금 골목길은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골목길이다. 이 황금 골목길 22번지에서 우리는 요절한 성격파 배우 추송웅을 만나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카프카는 이곳 22번지에서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썼는데, 이것이 바로 추송웅의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의 원작이기 때문이다. 프라하성에서 카를교를 향해 내려가다 보면 쉔보른궁이 있다. 황금 골목길 22번지에서 나온 카프카는 이 궁전에 방을 얻는다. 이 집에 살 때 카프카는 각혈을 했다. 폐결핵 발병! 이 집에 살면서 카프카는 ‘아메리카’를 썼다. 물론 카프카는 미국에 가본 일이 없다. 이 쉔보른궁은 현재 아메리카합중국 대사관으로 쓰인다. 말이 씨가 된다는 역사적 필연인가? 카프카 박물관도 꼭 가볼 만한 곳이다. 프라하성 아랫마을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박물관에 독신인 카프카가 사랑한 여인 4명의 부스가 따로 마련돼 있다는 사실. 밀레나 예젠스카, 도라 디아만트, 율리에 보흐리제크, 펠리체 바우어. 카프가와 주고받은 편지가 전시돼 있다. 카프카를 사랑했기에 박물관에서 영원을 살고 있는 여인들이다.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남자 프라하에는 카프카를 추억할 수 있는 곳이 무려 38곳이나 남아 있다. 대부분은 구시가 광장과 그 주변에 몰려 있다. 여름 밤, 구시가 광장의 노천카페에 앉아 황금색 필스너 맥주를 마셔보자. 그리고 취기가 오르면 차디찬 포석(鋪石)이 깔린 광장을 응시해 보자. 포악한 아버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은 소년이 고개를 떨군 채 지나간다. 잠시 후, 독일어 사용 대학을 다니며 괴로워하는 잘생긴 체코 청년이 휘청휘청 걸어간다. 문학이냐 결혼이냐 선택의 경계선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남자도 보인다. 이렇듯 프라하에 가면 카프카가 발길에 채인다. 그러니 어찌 프라하를 카프카의 도시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성관 / 주간조선 편집위원·‘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저자> 출처 : 대한항공 스카이뉴스 이메일 100210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