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잔. 최초의 맥주, 누가 마셨나? 이 황홀한 음료를 처음 맛 본 사람은 6000여년 전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란)에 살던 수메르인 주부(主婦)로 추정된다. ‘물과 곡식을 담아 뒀던 항아리. 며칠 지나 들어다보니 곡물이 발효돼 걸죽하면서 쉰 냄새가 나는 액체로 변해 있었다. 버리려니 아까워 한 모금 마셔보니 알딸딸한게 기분 좋더라….’ 맥주의 탄생은 이렇지 않았을까. 보리를 이용한 오늘날 맥주는 이집트인이 5000여년 전부터 마셨다. 지난 2002년 일본 기린맥주는 고대 이집트 맥주 재현을 시도했다. 이집트 고(古)왕국시대 벽화에 묘사된대로 구운 빵, 말린 포도로 만든 효모, 맥아를 사용했다. 색이 짙게 우린 홍차와 비슷하고 거품은 없었다. 홉(hop)을 사용하지 않아 쌉쌀하지 않았다. 신맛이 강해 화이트와인과 비슷하면서 막걸리처럼 걸죽했다. 알코올도수는 10%로, 5% 전후인 요즘 맥주보다 훨씬 독했다. 두번째 잔. 맥주는 잔에 따라 마셔야 하나? 맥주를 잔에 따르지 않고 병에 든채로 마시는 사람이 늘었다. 갈증 해소를 위해서라면 병채 마셔도 상관없다. 하지만 맥주를 잔에 따라야 향을 즐기기 좋고,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다. “맥주는 혀가 아니라 목으로 느끼는 술이에요. 거품이 사라지기 전 쿨럭쿨럭 마시면 쌉쌀한 호프의 풍미가 목을 타고 오르면서 혀를 조이는 쾌감을 줍니다.”(하우스맥주점 ‘캐슬 프라하’ 사장 ) 세번째 잔. 거품은 왜 ‘맥주의 꽃’인가? 거품은 탄산가스가 날아가는 것을 막는다. 또 맥주와 공기의 접촉을 막아 산화하지 않게 한다. 이상적인 거품 두께는 2~3㎝. 잔을 살짝 기울여 따르다가 똑바로 세워 세차게 따른다. 거품이 일기 시작하면 거품을 위로 밀어올리듯 조용히 따른다. 맥주잔에 기름이나 때, 세제가 묻어 있으면 거품이 잘 일지 않는다. 네번째 잔. 맥주는 어떻게 구별하나? 맥주는 제조방식에 따라 크게 라거(lager)와 에일(ale)로 나뉜다. 제조과정에서 발효 촉매인 효모가 양조통 바닥에서 활동해 만들어진 맥주가 라거다. 라거는 세계 맥주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맥주로, 한국에서 마시는 맥주는 거의 100% 라거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요즘 같은 투명한 황금빛 맥주는 1842년 체코 필젠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필스너(Pilsner) 라거’라고 한다. 이전까지 맥주는 짙은 갈색이었다. 독일 남부에서 발달한 밀맥주(‘바이첸’ 또는 ‘바이스비어’라 불린다)는 보리에 밀을 섞어 만든 맥주. 뿌연 황금빛에 오렌지를 연상케 하는 신선한 과일향, 뭉글뭉글한 입속 질감이 인상적이다. 에일(ale)은 효모가 양조통 표면에서 활동해 만들어진 맥주다. 쓰고 탄산이 적다. 흑맥주는 에일의 일종으로, 검게 그을린 보리를 사용해 콜라처럼 색이 짙고 캐러멜 향이 난다. 벨기에는 필스너처럼 옅은 색상에 꽃 또는 과일향이 나는 독특한 에일로 유명하다. 다섯번째 잔. 맥주마다 잔 모양이 다른 까닭은? 제대로 된 맥주집에서는 맥주에 따라 다른 유리잔을 준다. 필스너 맥주는 위로 조금씩 넓어지는 긴 맥주잔과 나온다. 풍부한 호프향을 코로 맡고, 거품을 눈으로 즐기라는 배려다. 향이 좋기로 유명한 벨기에 에일 전용잔은 크고 둥그런 형태에 잔 입술이 바깥으로 살짝 말렸다. 코냑잔과 비슷하다. 향을 한데 모아 코로 맡는데 이상적이다. 밀맥주잔은 잔 입술이 안으로 살짝 구부러져 과일향을 즐기기에 알맞다. 고급 에일은 잔 입구가 넓은 고블릿(goblet)을 쓴다. 미묘한 향을 깊이 들이킬 수 있다. 손바닥을 잔 아래 대고 에일을 살짝 데우기도 편하다. 좋은 에일은 약간 미지근해야 제 맛이다. 맥주는 너무 차면 맛이 덜하다. 봄·가을 섭씨 8~10도, 여름 6~8도, 겨울에는 10~12도가 좋다. 여섯번째 잔. 생맥주, 병맥주, 하우스맥주는? 열처리 여부에 따라 생맥주와 병맥주로 구분된다. 열처리를 않은 생맥주는 효모가 살아 있어 신선하되 상하기 쉽다. 하우스맥주는 대형 맥주회사에서 대량 생산해 공급하는 생맥주가 아닌, 술집(하우스)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맥주를 말한다. 싱싱하면서 술집마다 다른 맛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일반 맥주보다 2배 이상 비싸 벌컥 들이키긴 부담스럽기도 하다. 대개 ‘바이첸’(바이스) ‘헬레스’(필스너) ‘둥클레스’(흑맥주) 3가지 맥주를 선보인다. 마지막 잔. 맥주를 왜 ‘액체 빵’이라 하나? 재료도 비슷하지만 영양도 빵처럼 풍부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래서 맥주는 마시면 살이 된다. 특히 ‘뱃살’이 된다. 오죽하면 ‘맥주 배’(beer belly)란 표현까지 있을까. 생맥주 한 잔(500㎖) 열량은 190㎉. 식빵 2쪽(194㎉) 또는 밥 2/3공기와 비슷하다. 조선일보 글|김성윤기자 gourmet@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정복남기자 bn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