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로슬라브 올샤 대사(앞줄 왼쪽 네 번째)가 체코공화국이 유럽연합 의장국을 맡게 된 것을 기념해 2009년 1월 28일 서울주재 20개 EU 국가들과 유럽연합대표부 대사들과 공관장을 초대해 오찬을 함께 했다. 사진은 서울 홍익대 인근의 체코 레스토랑인 캐슬프라하www.castlepraha.co.kr)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야로슬라브 올샤 1964년 8월 4일 출생했다. 부인 미하엘라 보프코바(Michaela Vovkova, 1972년생, 외교관)와의 사이에 1남세바스티안(Sebastian, 2007년생)을 두고 있다. 1985부터 1995년까지 프라하의 카렐대학에서 아랍ㆍ아시아ㆍ아프리카학을 전공했다. 1988년에는 튀니지에서 실용언어기관인 부르기바에서 아랍어를 공부했다. 또 1990년부터 1992까지 암스테르담대학에서 국제관계학과 비교유럽학을 배웠다. 인터호텔 얄타 조명 기사(1983, 프라하), 수리수학설비 연구소 연구원(1984, 프라하)으로 근무했으며 프리랜서 통ㆍ번역가(1985, 프라하)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0년 3월부터 1992년 1월까지 SF 월간지인 를설립해 부편집국장을 지냈다. 1992년 외무부에 들어온 후 중동ㆍ남아프리카부서 서기관(1992)을 거쳐 1993년에는 본드라(A. Vondra) 외무부 제1차관의 무기규제와 수출 및 관련 분야 고문으로 근무했다. 이후 아프리카부서 국장(1996), 중동ㆍ아프리카부서 과장(1997), 아프리카부서 국장(1998)을 역임하고 1999년 대사로 임명됐다. 이후 2000년부터2006년까지 짐바브웨, 잠비아, 모잠비크, 앙골라, 말라위, 상투메 프린시페 대사를 지냈다.2006년 정책기획부 과장과 정책기획부 국장대리를 역임한 후 2008년 9월 주한체코대사로 임명됐다. 커버스토리 야로슬라브 올샤 주한 체코 대사 인터뷰 | 김종영 기자 sisacolumn@gmail.com 지난 2008년 9월 주한체코대사로 임명된 야로슬라브 올샤(Jaroslav Olsa, jr.) 대사는 역사와 문화유산이 가득한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외교안보부터 문학까지 섭렵한 인재 야로슬라브 올샤 대사는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무기 수출 및 군ㆍ민간 겸용 물품 관련 체코 사절단 일원과 대표를 지냈으며 1994년에는 르완다와 우간다에 파견한 체코 인도주의 사절단 대표를 맡기도 했다. 또 파푸아 뉴기니, 브루나이 다루살람과의 외교관계 설립을 위한 사절단(1995), 리비아-몬로비아와의 외교관계 설립을 위한 사절단 대표(1998)도 역임했다. 태평양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구축하는 책임자로서 50여 개 국가를 방문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야로슬라브 대사는 아프리카 및 아시아 역사, 문화, 문학 관련 서적 및 기사를쓴 저자로도 유명하다. 특히 SF 문학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집필 활동을 한 바있다. 이 외에도 내셔널지오그래픽, 뉴오리엔트, 세계문학, 국제정치학, 국제관계학분야와 체코어 및 외국어로 된 다양한 백과사전 작업에도 참여했다.폴란드 작가가 쓴 정치 SF 소설과 SF문학 백과사전, (25여 개국의SF 소설 선집), <기우사>(근대 짐바브웨소설 선집), <짐바브웨 석상의 4세대>(짐바브웨 주요 예술 형태의 역사와 발전상을 담은 책),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역사>(선사시대부터 2008년까지의 남아프리카 역사를 간결하게 집필한 책) 등여러 권의 장편을 출간했다. - 체코는 유럽의 심장 같은 존재우선 체코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체코가 유럽에 심장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현재 인구는 1000만 명입니다. 흔히중부유럽 지역에서 ‘산업의 허브’라고 불렀던 나라입니다. 다시 말해 중부유럽의산업생산 중심이었던 곳이지요.짧게 소개를 하겠습니다. 1918년도 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습니다. 이 제국은 유럽의 심장을 구성한복합적인 국가들이었습니다. 그 시기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체코의 위치는그 제국의 산업허브였습니다. 그래서 체코는 작은 나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아주 중요한 산업국가입니다. 또한 작은나라이지만 산업생산이 활발해서 한국처럼 무역 국가랍니다. 체코 소개 국명: 체코 공화국 (Czech Republic) 면적: 78,864 sq km 인구: 1,030만 명 (증가율 0.5%) 수도: 프라하 (Prague, 인구 120만 명) 인종: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폴란드인 언어: 체코어 종교: 로마가톨릭교 40%, 개신교 10% 정체: 의회 민주주의 초대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현 대통령: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는 오스트리아,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공화국과 인접해 있다. 서부 보헤미아(Bohemia)와 동부 모라비아(Moravia)로 이루어진다. 모라비아 서쪽의 일부는 실레시아(Silesia)라고 불리는 역사적인 지역이며, 나머지는 현재의 폴란드이다. 체코의 수도이자 보헤미아 수도인 프라하는 블타바강(Vltava)과 라베강(Labe)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체코는 산, 완만한 고원과, 저지대, 동굴, 협곡, 넓은 평원, 습지, 호수, 연못, 댐 등 정말 아름답고 다채로운 자연을 자랑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대기오염과 산성비 오염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19세기 무분별한 산업화의 영향이다. 경작을 위해 수세기에 걸쳐 나무를 베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체코의 1/3은여전히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천연의 숲은 대부분 경작이 불가능한 산악 지역에 있다. 수목 한계선(1400m) 이상으로는 초원, 관목림, 지의류 등이 있다. 곰, 늑대, 스라소니와 그 외 야생고양이,마모트, 수달, 담비, 밍크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숲과 습지대에는 꿩, 자고, 오리, 야생거위 등 사냥조류들이 서식하는데, 이들은 주로 사냥감이다. 독수리, 콘돌, 물수리, 황새, 느시, 뇌조 등도 드물게 눈에 띈다. 체코의 대부분 지역은 습기 많은 대륙성 기후이므로 여름엔 따뜻하고 비가 많으며, 겨울엔 춥고 눈이 많다. 기온 변화는 완만한 편이다. 가장 더운 달은 7월이고, 가장 추운 달은 1월이다. 12월에서 2월까지는 저지대도 영하로 떨어지고 산악지방은 정도가 더 심하다. 사실상 ‘건기(乾期)’라 는 것은 없다. 갑작스런 천둥번개로 무더운 여름이 사라지기도 한다. 겨울에는 40일에서 100일정도 눈이 내리고(산간지방은 130일 정도), 저지대는 안개까지 낀다.체코인은 꾸밈없고, 온순한 사람들로, 작은 나라치고는 놀라울 만큼 광범위한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모습을 갖고 있다.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에서 폴란드인과 헝가리아인까지 다양하다. 자유로운 모습에서 엄격한 전통적인 모습, 또 세계화된 사고방식에서 국수주의까지 존재한다. 가장 큰 교회는 로마가톨릭교회이고, 1991년, 체코인 중 40%도 채안 되는 수가 가톨릭교도라고 말했지만,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다.학생들뿐만 아니라 고령자들에게도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나라, 자녀들과 휴가를 떠날 수 있는 나라, 연인과의 낭만적인 여행이나 사업상 미팅 장소로 적격인 나라. 체코 공화국을 수식하는 표현들이다. 체코는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한 음악의 나라이기도 하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체코에는 수많은 박물관, 미술관, 유적지가 있으며 이는 프라하뿐만 아니라 체코의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체코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대 도시, 성, 성당과 수도원으로 장식한 나라라는 말이 무척 잘 어울린다. 체코의 뛰어난 문화유산 중 12개의 유적지는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이 같은 많은 문화유산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집중되어 있는 곳이 체코다. - 대사관 홈페이지에 있는 프로필을 보니 다양한 경험을 쌓고 지난해 주한체코대사로 임명되셨습니다. 이 중에서 관심을 끄는 것 은 외무부에 근무할 당시 무기수출 및 군과 민간 겸용 물품 관련 체코사절단 대표로 활동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소개하 거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갈라지고 1993년에 체코가 설립되면서 저는 외무부에 무기수출 통제 체제를 설립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체코는 과거처럼 오늘날에도 중대한 무기 수출 국가이기 때문에이런 일은 중요한 사업이었습니다. 수출에 대한 규제는 엄격해야 했지만 실용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우리 팀은 통상부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은 법과 규을 준비하고 무기를 매매하는 업체들을 통제하고 무기나 관련된 이중적 용도 물품들을 수출하는 업체들도 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 Missile Technology ControlRegime), CoCOM(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 Coordinating Committee for ExportControl), 바세나르협정(WA, Wassenaar Arrangement, 94년 3월 새로운 체제 설립을 목표로 발전적으로 해체한 구(舊)CoCOM을 대체해 지난 96년 7월 정식 설립했으며 같은 해 11월부터 본격 가동되기 시작한 전략물자수출통제체제를 말함. 정식 명칭은 ‘재래식 무기 및 이중용도 품목 및 기술의 수출통제’를 뜻함) 등과 같은 국제단체를 가입해 이중용도 물품들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유고슬라비아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를 통해 유고슬라비아에 무기를 수출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UN의수출금지 조치를 따르기 위해 체코 무기가 못 들어가게 통제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당시에 처음으로 이에 대한 법과 규 정을 설립했는데, 이후 조금 수정을 했을 뿐 대부분의 법과 규정들은 오늘날의 체제에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과제가 마무리된 후 저는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다른 부서로 옮겨 일을 했습니다. 거기서 3년을 일했습니다. - 1993년을 기준으로 할 때 옛 체코와 새로운 체코로 나누어 부르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이를 ‘체코슬로바키아 이름 분쟁’이라고 하더군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름 분쟁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름 전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이름은 인위적인 것이었습니다. 1918년 독립 이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인 두 나라가 합친 이름입니다. 오히려 1920년대 때 체코슬라바키아라는 이름을 싫어한 시민들 때문에 이름 갈등이 더 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93년 때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갈라지면서 당연히 체코 지역은 체코라는 이름을 유지했고 슬로박은 슬로바키아라는 이름을 유지했습니다. 한 나라 이었을 때 갈등이 더 심했다고 봅니다. 이름 갈등보다는 정체성의 이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관계는 특별하다고할 수 있습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언어는 똑같지 않지만 유사해서 체코 인구 99%는 슬로바키아 언어를 알아듣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외교관이나 외무부도 체코-슬로바키아 관계를 쉽게 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슬로바키아와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밀접하고 깊은 관계입니다. 한 나라였을 때는 수 만 명의 체코 사람들이 슬로바키아 사람들하고 결혼하고, 슬로바키아 사람들도 체코와 결혼을 했습니다. 많은 점에서 아직도 큰 차이를 못 느낍니다. 관계가 아주 깊어서 외교관계라고 보기도 힘들 정도로 가깝습니다. - 체코는 다민족 국가입니다. 체코, 슬로 바키아, 모라비아인 순으로 인구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체코인은 총인구의81.2%, 슬로바키아인은 총인구의 3.1%, 모라비아인은 총인구의 13.2%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역이나 인종 또는 민족에 따라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체코는 어떻습니까? 한국처럼 민족이 동질적인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유럽은 전체적으로 다인종 대륙입니다. 그래서 체코에 다른 민족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크게 놀랍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수민족들 간의 갈등도 거의 없습니다.그런데 말씀하신 통계 자료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체코에 ‘모라비안’이라는 국가는 없습니다. 체코의 일부분에거주하고 있는 민족(사람들)입니다(모라 비안의 뿌리는 현 체코슬로바키아의 서부인 보헤미아(Bohemia)에서 중세 후기,기독교의 급진적인 운동들에 뿌리를 두고 있음).제주나 부산처럼 지역적 자부심이고모라비안 사람이라고 일컫지만 우리 시민들의 대다수는 체코 사람이라는 것을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체코에는 소수민족들이 많습니다. 놀랍게도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민족은 베트남 사람들입니다. 현재 체코에 8만여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중국인들도 상당히 많지만, 아시아 주민들 중에는 베트남이 제일 큽니다. 고위 공무원을 하는 베트남민족도 있습니다. 또 체코어로 작품을 쓰는 베트남 작가도 있고 모델, 배우 등도있습니다. 대부분 이들은 베트남 2세들이 며, 우리는 이들을 모두 체코 사람이라고생각합니다. 단지 체코 국적을 갖고 있지만 베트남 민족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 한국인도 많이 있나요? 한국 사람들은 대략 2000명 이하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단기적으로 온 사람들입니다. 그 중 몇 명은 체코 사람이랑 결혼한 사람도 있고요.반면 베트남 사람들은 이민을 온 경우가 많습니다. 체코에서 몇 십 년을 살면서 체코를 고향으로 삼은 거죠. 중앙유럽은 용광로입니다. 많은 민족들이 긴밀한 접촉과 미운 정 고운 정의 관계로 어울려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유명한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이 분은 로고를 디자인 하고 서울, 프라하와 뉴욕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어요. 체코 축구팀에서 뛰는 한국 선수도 있고 한국 아이스하키 팀에 체코 선수 한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중에 체코에 뿌리를 내려서 살고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 체코는 사회주의 국가였기 오랫동안 한국과 국교를 수립하지 못했다가 지난 90년 3월 공식 수교를 체결했습니다. 88년 서울올 림픽에 체코선수단이 민간으로는 처음으로한국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정치ㆍ경제적 관계까지 풀리면서 국교를 수립한 것으로볼 수 있습니다. 수교 관련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정식 수교 이전부터 체코와 한국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체코는 1918~1919에설립됐습니다. 이때 체코의 제일 강력한군대는 블라디보스토크에 기지가 있었습니다. 약 6만 명의 체코군이 소련의 공산당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상해에 설립된 한국 임시 정부와 접촉이 처음됐습니다. 이 첫 만남 이후 체코 군사와한국 임시정부 대표들(예를 들어 이승만)과 많은 접촉과 소통이 유지했습니다. 한국 대표들은 체코 장군들과 만났고 장관들도 한국 임시 정부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체코군 총사령관이 상해에 있던 임시정부 대통령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은색 꽃병에 한국 독립을 위해 기여한 것에 대한 감사의 글도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게 공식적으로 체코와 한국의 외교관계라고 할 수도 있지요. 1920년대에 중국에서 유명한전투(청산리 전투)를 치른 한국 전사들도체코 무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세계2차대전 이후 체코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당연히 소련을 따르게 됩니다. 이념을 공유하게 돼서 북한과 1948년 에 외교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념적 차이때문에 그때는 대한민국과의 외교관계는 불가능했지요. 하지만 체코는 우호적인 나라입니다.흥미로운 사실은 1940년대 한국의 군사정권(1945~1948, 미군정기)에 활동하던 법률고문 중 한 명은 체코 사람이었습니다. 반공산당이어서 미국으로 탈출했다가 한국으로 온 것이죠. 또한 체코 군인들이 한국 전쟁 때 영국이나 미국군과 함께 싸운 기록이 있습니다. 영국 조종사들 중 최우수의 조종사로 알려진 사람도 체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60년 전, 그러니까 1950년대부터체코에서는 한국학이 시작됐습니다. 대한민국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어도 대한민국의 존재와 한국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다 알았습니다.올림픽 이후 변화가 생기면서 외교관계가 설립됐고 좋은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지요. 한국은 유럽국가 외에 체코의 네 번째로 큰 무역국가입니다. 1위는 중국, 미국, 일본, 그다음엔 한국입니다.그리고 한국도 체코에 투자하는 국가 중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투자규모는 프랑스보다 2배나 많습니다. - 2010년은 수교 20주년이 됩니다. 기념행사 등이 열릴 것 같은데요. 20주년을 맞이하여 공연 시리즈를 열계획입니다. 체코의 유명한 교향악단이 서울로 올 예정입니다. 또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운 하벨 전 대통령이 쓴 연극 작품도 서울에서 공연할 예정이고 책도 출판할 것입니다. 그리고 체코-한 국의 1세기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 프라하에서 일어난 ‘벨벳혁명’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체코와 대 사님에게 있어 벨벳 혁명은 어떤 의미인가요? 벨벳혁명은 체코에게 있어 큰 의미가 있습니다. 벨벳혁명이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벨벳혁명이 없었다면) 서울에는 사회주의의 체코대사관이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대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개인적으로 공산주의의 붕괴는제 인생에서 가장 역사적이고 비중이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또한 제할아버지도 공산당 정권 시기에 감옥에 간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1968년에 대학교서 데모단체와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의 외교관은 절대로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외교관이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저는 서점에서 책을 팔거나 사서가 됐을 것입니다. 이것은 비민주주의 국가나공산당 정권의 현실입니다. 직업이 계층별로 미리 정해져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초부터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친구들과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체코대사들도 한때는 청소부나 서점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 중략 - 현재 서울은 상당히 춥습니다. 한국은 체코와 날씨가 비슷합니까? 여기 날씨는 아주 좋습니다. 지난 주날씨 또한 좋았습니다. 체코는 보통 서울과 기온이 거의 똑같습니다. 대략 영하 5도 정도죠. 하지만 일 년에 한 번은 기온이 영하 10도에서 영하 15도로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매년 한 두 번은 폭설이 있어요. 체코도 날씨에 따라 나름대로 준비를합니다. 특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 경우에는 나라 전체가 중지 상태가 됩니다.현재 체코는 그 중지 상태입니다. 1미터가 넘는 눈이 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그래서 중지 상태가 오는 것을 알지만 크게 상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작은 강과 양쪽에 산이 있는 나라입니다. 눈이 와서 차량이 미끄러지는등 어려움이 많아요. 창문을 열고 눈이온 것을 보면 출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다들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 월요일에 창문을 열고 밖 을 보니 폭설이 내려 있더군요. 그래서 비서에게 연락해서 출근을 안 했습니다. 차를 손상시킬 필요는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런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입니다. - 대사님은 실제 나이보다 아주 젊어 보입니다. 저는 젊지 않습니다. 전 10년 전에 대사였습니다. 1990년대에는 외교부에서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25~30세인 사람들이 외교부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10년이 지난 후 체코외교부를 이끌던 사람들이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35~40세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의 대다수였고, 저는 36세에 처음으로 대사가 됐습니다. 중간 세대는 주로 공산당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정치적 변화가생기면서 정치생활을 할 수 있는 중간세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밑에 있는 젊은 층이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이지요. 그래서 보통 외교관들보다10~20년 일찍 외교관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정치적 변화가 있을 때 흔히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저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현재 외교관이나 대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경력을 보면 지질학자, 농업전문가 혹은 공학기술자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예전 정권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에요. 주류에서 떨어져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지금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공무원이 된 것입니다. 한 유명한 체코 외교관은 한때 유명한 영화배우였습니다. 이 분은 슬로바키아외상이었고 슬로바키아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었던 인물입니다. 1980년대에유명한 영화배우였지만 정치적 변화가생겨서 이 분도 총명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죠. 전에는 숨겨왔던 재능이 드러나 외교관이나 외상이 됐어요.이 시기의 많은 사람들은 공산당 정권 에게 어떤 활동을 보여주지 않았고 관심사도 숨겨 살았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 않고 그냥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 있었죠. 그러다가 상황이 바뀐 후에는 외교 정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숨은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후략 국내유일 100% 체코산 맥아로 만든 맥주는 캐슬프라하와 보헤미안 비스트로 프라하에서만 드실수 있습니다. --------------------------------------------------------------------------------------- 체코의 문화와 고유의 맛을 전파하고 있는 캐슬프라하는 동유럽 체코 프라하를 한국에 재현한 국내 유일한 체코식 하우스 맥주전문점입니다. 100% 체코산 맥아를 이용해 만든 세가지 맛의 맥주와 체코 전통음식과 함께 2003년 강남점 오픈을 시작으로 홍대점, 보헤미안 비스트로 프라하 홍대점,이태원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제 체코 프라하의 구 시청광장에 있는 명물 천문 시계탑 성을 그대로 건물에 재현하여 체코의 맥주와 음식을 전파하는 역할과 생생한 현지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있으며, 홍대점 3층에는 유럽문화원으로는 다섯번 째인 체코정보문화원이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관광명소 소개는 물론 크리스털, 클래식 음악, 영화, 문학 등 문화 예술 안내와 중소기업 투자 유치 등 복합공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동유럽 체코 프라하의 구 도시 청사 건물을 그대로 재현한 서울 도심속의 체코- 홍대점은 국내외 다수 영화 및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 ㈜캐슬프라하 | 강남점 02 596 9200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06-6 파고다타워 B 1F | 홍대점 02 334 2121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95-19 B 1F | 보헤미안 비스트로 프라하 | 홍대점 02 3342181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95-19 1,2F | 이태원점 02 3785 2181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53-17 한남빌딩 1F | 체코정보 문화원 02 3143 3148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95-19 3F